현대에 들어 사람들은 단순한 이야기나 소재 뿐만 아니라 특정 상품들에도 콘텐츠가 있기를 원한다. 가령, 배추를 판매하는데 그냥 판매하는 것이 아닌 배추 느낌의 한복을 디자인해 캐릭터를 만들고, 소비자는 배추를 먹기도 하지만 그 그림을 보고 팬아트를 그리거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식이다. 그렇다면 콘텐츠라는 것은 언제부터 존재해왔을까?”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콘텐츠는 동굴벽화라고 할 수 있다. 동굴벽화를 보게 되면 주로 동물들과 그것을 사냥하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이것이 무언가 설명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그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이유이던 간에 당시의 콘텐츠 제작자가 선택한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는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이고, 심지어는 종이도 발명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어떤 정보를 말과 행동으로만 전해야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움막 등이 발명되기 이전인 수렵과 채집을 통해서 생존하던 시기였고 사냥 방법은 생존에 필수적인 정보였다. 이런 정보를 말과 행동으로만 전달하게 되면 이해를 잘못 하기도 쉽고 명확하게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에 따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는데, 바로 그림을 그려서 설명하는 방법이다. 그림은 글을 모르는 사람들도 보고 이해하기가 쉽다. 글을 읽지 못하는 어린 아기들도 그림책을 보는 것을 그 증거로 들 수 있다. 그렇게 정보를 전달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했던 제작자는 벽화를 그려 정보를 전달했고, 수용자들은 정보를 보다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 지점에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커뮤니케이션은 당사자들 간 정서와 의미의 공유를 돕고, 이런 정서와 의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형성하도록 한다. 하지만 전달자의 메시지를 수용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잡음’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방해한다. 동굴벽화를 그리기 전 정보전달은 아마 말이나 행동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것은 듣는 사람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의미나 정도가 다를 수 있는데, 이것이 커뮤니케이션에서 말하는 ‘잡음’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콘텐츠 제작자를 커뮤니케이션에서의 전달자라고 본다면, 이런 잡음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했고, 보다 의미가 틀어지지 않는 그림이라는 방식을 고안해냈을 것이다. 이를 통해서 해당 부족 내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이 보다 정확하고 활발하게 이루어졌을 것이며, 이를 통해 생존에서 보다 유리해지고 부족 내 정서 공유가 이루어지면서 더 큰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타 부족보다 경쟁에서 우위를 가져가는 데 주효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동굴벽화라는 콘텐츠는 사회적으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을 이루어 발전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는 사회발전적 기능을 했다고 할 수 있으며,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의 한 단계 발전과 정보의 전달과 계승이라는 데에도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굴벽화와는 달리 한국의 ‘굿’은 말과 행동으로 만들어내는 콘텐츠다. ‘굿’이라는 것은 분명 미신적인 콘텐츠일 수는 있으나, 단순히 미신적인 것만은 아니다. 영화 ‘만신’의 김금화 만신은 “세상 사람들 몸의 병, 마음의 병을 고쳐주는 큰 무당이 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즉, 굿은 죽은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를 통해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는 마음의 짐을 덜어주기도 하며, 때로는 마을이 평안하도록 굿을 해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평안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금이야 과학이 발달하고 굿을 빌어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 그로부터 심적인 여유를 가지고 일을 하니 더 잘 되는 사이클을 미신적인 행위로 풀어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굿은 실제로 효력이 있으므로 그로부터 오는 마음의 위안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형태로 나타나는 이유는 뭘까?
사실 미신으로 마음이 평온해진다고 하면 굳이 굿을 하지 않더라도 천하대장군이나 지하여장군같은 장승들을 마을에 세우는 식의 방법도 있다. 하지만 콘텐츠 제작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사람들의 마음에 더 가깝고 쉽게 와 닿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굿’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조각을 하거나 글을 써서 마음을 위로한다고 생각했을 때, 아무래도 조각이나 그림, 글을 통해서 감정을 전달받기란 어렵다. 마치 전화통화와 문자메시지의 차이 같은 것인데, 문자메시지에는 억양이나 강조하는 부분들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감정을 느끼기가 어렵다. 이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에 쉽고 빠르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감정이 잘 전달되는 춤과 노래가 적당했을 것이다. 이를 경영학적으로 풀어봐도 마찬가지다. 무당을 콘텐츠 제작자, 곧 생산자(경영자)라는 시점에서 봤을 때, 무당은 사람들에게 ‘굿’이라는 콘텐츠(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굿을 통해 만족을 얻는데, 이를 고객경험이 좋은 상태라고 칭할 수 있다. 고객경험이 좋게 남으면 다음에 그 서비스를 이용할 확률은 당연히 높아진다. 따라서 무당이라는 이 콘텐츠 제작자이자 경영자는 ‘굿’이라는 서비스가 고객경험을 더욱 좋게 하도록 힘써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형태가 때로는 칼날을 타는 등 점점 더 강렬한 형태로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굿이 마음의 위로만을 위해서 존재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당시에도 미신이라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조차 당시에는 지금처럼 TV나 기타 즐길거리가 부족했기 때문에 현대의 우리가 예능프로그램을 보듯이 굿을 즐겼을 것이다. 이런 수용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콘텐츠 제작자는 마땅히 더욱 재밌는 콘텐츠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굿’이라는 콘텐츠를 통해 당시의 사람들은 위안을 얻고 희망을 얻고, 때로는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또한 마을을 위해 굿을 하고 마을의 복을 빌면서 소속감이 고취되고 정서도 공유되는 효과를 얻었을 것이다. 즉, 이 ‘굿’이라는 춤과 노래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으로 비춰지는 콘텐츠를 통해 사람들은 같은 정서를 공유했을 것이고 소속감이 생기면서 마을 공동체가 더욱 단단하게 유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굿’이라는 콘텐츠의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의학과 과학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했던 시기의 사람들에게 ‘굿’은 삶의 위로이자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굿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공동체 의식으로서의 의미가 있었을 것 같다.
이렇듯 동굴벽화와 굿은 사회 공동체의 형성과 유지, 발전의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더불어 그 당시 사람들이 택할 수 있었던 각 콘텐츠의 기능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는 것도 공통점으로 들 수 있다. 동굴벽화의 제작자는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할 때 글자가 없는 상황에서 수용자에게 이야기를 이해시키고 설령 까먹더라도 다시 기억해낼 수 있는, 즉 정보의 유지를 위해서 ‘그림’을 선택한 것이고, 굿의 제작자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기에 부족한 그림과 글자를 선택하지 않고 노래와 춤을 선택한 것이다.
반면에 차이점도 상당수 존재한다. 먼저 동굴벽화는 말과 행동이라는 무형적인 것이 아닌 ‘그림’이라는 유형적인 방식을 선택했다. 이는 말과는 다르게 시각에 의존한 콘텐츠이며, 쉽게 사라지지 않는 콘텐츠로 이야기를 몇 년이 지나도 이 콘텐츠를 통해 전달할 수 있다. 또한 보다 이해가 쉽고 직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함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에서 이야기하는 잡음이라는 것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즉, 정보를 보다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런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다른 부족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서고, 그들보다 우위라는 정서를 공유하여 더욱 단단한 공동체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굿은 정 반대의 방법으로 같은 효과를 불러왔다. 굿은 유형적인 콘텐츠가 아닌 무형적인 콘텐츠다. 형태가 없는 노래와 춤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왜냐하면 벽화는 정보를 전달하고 보존하는 기능을 해야하기 때문에 보존이 불가능하며 사람을 거칠 때마다 이야기가 조금씩 바뀔 수 있는 말과 행동을 선택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굿은 정보가 아니라 감정과 정서의 전달에 초점이 맞춰져있기 때문에 감정을 느끼기 힘든 그림이나 글 보다는 감정을 싣기 쉬운 노래와 춤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문화와 볼거리를 즐김으로 우리는 같은 민족이고 하나라는 정서를 공유하여 더욱 단단한 공동체로 발전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두 콘텐츠는 위에서 상술한 각각의 의미와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처럼 인간들은 사회적으로 공통된 정서를 공유하는 집단이 있고, 콘텐츠를 그런 집단을 만들고 유지시키며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콘텐츠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크게는 국가의 미래가 결정된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따라서 우리는 콘텐츠를 만들고 소비할 때에 조금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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