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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창작하여 쓴 글입니다. 도용 및 사용을 금합니다. (c.2017) [창의적 글쓰기 과제] 

 

그 날 이후로 점순이는 매일같이 우리 집에 놀러왔다. 그 수탉도 함께였다. 그리 달갑지는 않았지만 그리 기분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도리어 점순이가 쪼매만 손으로 모이를 한 움큼 흩뿌려 놓는다던가, 칠칠치 못하게 입가에 그을린 자국을 묻히며 맛나게 감자를 먹는 모습이 여간 귀여운 것이 아니었다. 종종 보면 마음씨도 착해보였다.

 

어느 날은 내가 산에서 내려오고 있을 때였다. 동백꽃밭 저쪽에서 덩치가 산허리만치 큰 사내들이 이미 해가 넘어간 노을을 등지고 서서 아래를 향해 발길질을 해대고 있었다. 가만 보니 왠 약해보이는 아이가 발 밑에서 저항을 하고 있었다. 잘못 걸리면 큰일나겠다 싶어 동백꽃 사이로 풀썩 주저앉았다.

 

.”

 

별안간 귓가에 점순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내 얼굴은 아랑곳하지 않을 채 어깨에 얼굴을 기대더니,

 

보고만 있을 테야?”

 

하고 속삭였다. 향기에 정신이 아득해져갔다.

 

아니, 아니지.”

 

역시. 손 줘봐.”

 

손을 내밀자 점순이는 작고 보드라운 손을 내밀어 돌 몇 개를 쥐어주었다. 그리고 자기 머리를 풀어헤쳤다. 이 산에는 초저녁에 원한을 품은 처녀귀신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마 그것을 이용하려는 성싶었다. 은밀히 눈빛을 주고받은 나는 사내들을 향해 돌을 하나 둘 던졌다. 때마침 바람이 불어 풀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뭐야?”

 

돌에 맞은 사내 하나가 인상을 팍 쓰고 이쪽을 바라봤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점순이는 벌떡 일어나서 가만히 서 있었다. 평소에는 아름답게 하늘하늘 거리던 흰 옷이 그렇게 무서울 수 없었다. 사내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양 옆의 사내들을 건드렸다. 곧 나머지 사내들의 시선도 이쪽을 향하자, 점순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기괴하게 몸을 꼬면서 앞으로 턱 턱 걸어가기 시작했다.

 

, 귀신이야!”

 

좀 전까지 사람하나 죽일 것 같은 표정으로 사람을 때리던 덩치들이 곧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꽁지가 빠지게 달려 도망가는 모습이 너무도 우스꽝스러웠다. 그저 한낱 키작은 소녀일 뿐인 점순이에게 놀라자빠지면서 후두둑 도망가는 꼴이란 두고두고 다시 보고 싶은 장면이었다.

지금도 이 동백꽃밭을 지날 때마다 슬그머니 웃고는 한다. 우리 집 마당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점순이를 생각하니 발걸음이 빨라졌다. 무슨 사고를 쳤을지 걱정도 되지만 오늘은 내 생일이기도 하고 점순이네 암탉이 드디어 병아리를 보는 날이기도 했다.

 

빨리!”

 

대문에 당도하자마자 점순이가 나를 이끈다.

 

곧 알을 깰 것 같아.”

 

점순이네 암탉의 알에서 톡톡 소리가 나면서 갈라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 장면을 나란히 바라봤다.

 

나온다! 나온다!”

 

점순이가 상기된 목소리로 내 어께에 기댄다. 그러더니 내 손을 자그마한 손으로 꽉 쥔다. 푹 풍겨져오는 향기에 머리가 하얘진다. 병아리 3마리가 완전히 알 밖으로 나올 때까지 그 상태로 있었다. 삐약거리는 소리가 많아질수록 귓불이 뜨거워졌다.

 

.”

 

?”

 

점순이가 갑자기 손가락으로 한 병아리를 가리킨다.

 

얘는 네 닭이야.”

 

점순이가 나를 바라본다. 눈이 마주치자 점순이가 깜짝 놀라 딴 곳을 바라봤다. 짓궂던 눈동자에 따듯한 반짝임이 엿보인다.

 

전에 미안해. 그리고 고맙기도 해서.”

 

살짝 옆으로 향한 눈을 담은 얼굴에 노을빛이 묻어 붉어 보인다.

 

, 생일이지?”

 

.”

 

축하해.”

 

저 흔들리는 목소리는 내 마음이 흔들린 것일 게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노을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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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light, Economic, Agriculture

농업경제학으로 석사학위를 마치고 때려침